교산·난설헌의 생애

  • Home
  • 교산·난설헌의 생애
  • 난설헌의 생애

난설헌의 생애

허초희

(許楚姬, 1563 ~ 1589)

영정사진 보기
교산
영정사진 닫기
난설헌의 영정사진

허초희(許楚姬, 1563 ~ 1589), 난설헌(蘭雪軒)은 호, 자는 경번(景樊)이다. 신동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글재주가 뛰어났으며 아름다운 용모와 천품이 뛰어나 여덟살 때에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었다.
당대 석학인 아버지 허엽과 오라버니,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익혔으며 손곡 이달에게 시를 배웠다.


213수의 주옥같은 시를 남겼으며 동생인 허균이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게 난설헌의 시를 넘겨주어 1608년 중국에서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그 후 중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격찬을 받아 당대의 세계적인 여류 시인으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었다.

  • 1세(1563, 명종18년)허난설헌은 강릉 초당 생가에서 초당 허엽의 삼남 삼녀중 셋째딸로 태어났다.
  • 8세(1570, 선조3년)『광한전백옥루상량문』을 지었으며 뒷날 주옥같은 시 213수를 남겼다.
  • 15세(1577, 선조10년)난설헌은 이 때 서당 김성립에게 시집간 것으로 보인다.
  • 23세(1585, 선조17년)자기의 죽음을 예언하는 시『몽유광산산』를 지었다.
  • 27세(1589, 선조21년)짧은 나이로 한많은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경기도 광주군 초월면 지월리 경수산에 묻혔다.
  • 1590년(선조23)이 해 11월 남동생 허균이 친정에 흩어져 있던 난설헌의 시를 모으고, 자신이 암기하고 있던 것을 모아서 『난설헌집』 초고를 만들고, 유성룡에게 서문을 받았다.
  • 1592년(선조25)난설헌의 남편 김성립이 임진왜란에 참가하여 전쟁중에 싸우다가 죽었다.
  • 1598년(선조31)이 해 봄 정유재란때 명나라에서 원정 나온 문인 오명제에게 허균이 난설헌의 시 200여편을 보여주었다. 이 시가 『조선시선』『열조시선』등에 실렸다.
  • 1606년(선조39년)허균은 이 해 3월 27일 중국사신 주지번, 양유년 등에게 난설헌의 시를 모아서 전해주어 『난설헌집』은 사후 18년 뒤에 중국에서 간행되었다.
  • 1607년(선조40년)이 해 4월 허균이 『난설헌집』을 목판본으로 출판하였다. 난설헌집의 발문은 태안 피향당에서 지었다.
  • 1711년일본에서 분다이야 지로베이에 의하여 『난설헌집』이 간행되었다.
  • 1913년조선 선조때 중국으로 건너간 역관 허지의 딸인 허경란이 난설헌의 시를 읽고 감화받아, 자신을 소(小)설헌이라고 칭하며, 시를 지은 『소설헌집』이 활자본으로 신해음사에서 출판되었다.
여성들이 제 이름도 갖지 못했던 시대, 난설헌의 [앙간비금도]는 여성적 자아가 투영된 최초의 작품.
부녀로 보이는 두 인물이 뜰에 서있다.
어린 딸은 머리를 젖혀 저 멀리 산 위로 날아가는 새를 바라보는데, 그 소녀야말로 허난설헌의 또 다른 자아라고 미술사가들은 말한다.